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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크/애플

[jobs] 스티브 잡스의 일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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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과 함께 보는 스티브 잡스의 일대기 입니다.


스티브 잡스의 어린시절 집.

잡스는 1955년 태어나자마자 이집의 주인인 잡스부부에게 입양되었습니다.

왼쪽으로 보이는 차고가 잡스가 애플을 처음 만든 바로 그 차고.


스티브 잡스와 스티브 워즈니악은 고등학교때 부터 친구였다고 합니다.

나이는 워즈니악이 많았지만, 둘은 쉽게 뜻을 모을 수 있었습니다.


20대 초반의 스티브 잡스.


잡스와 워즈니악은 HP에서 방과후 강의를 들었고, 여름에는 인턴직원으로 일했습니다.

대학을 중퇴한 잡스는 인도로 여행을 다녀온 뒤 고향에서 워즈니악을 다시 만납니다.


잡스는 폭스바겐 자동차를, 워즈니악은 hp의 공학용 계산기를 팔아

1300달러의 자금을 마련했고, 이 돈이 애플설립의 자본이 되었습니다.


잡스의 사진 뒤로 'Think' (생각하라)라는 단어는 잡스의 삶을 보여줍니다.

이는 후에 잡스가 애플 ceo로 복귀 할때, Think Different로 바뀝니다.


1984년 최초의 맥컴퓨터.

그래픽유저인터페이스(GUI)를 탑재한 최초의 개인용 컴퓨터.


애플에서 쫓겨난 잡스가 세운 새로운 회사 NEXT.

넥스트에서 만든 넥스트스탭은 현재의 맥과 아이폰 등에 탑재된 OS X의 근간이 되었습니다.


넥스트 시절의 잡스.


잡스는 1991년 로렌스와 결혼합니다.

둘은 수하에 3명의 자녀를 둡니다.


픽사의 3D 애니매이션 <토이스토리>는

스티브 잡스를 콘텐츠의 세계로 인도함과 동시에 돈방석에 낮혔습니다.

픽사는 잡스가 애플에서 쫓겨난 이후인 1986년 조지 루카스로부터 매입한 회사입니다.


맥월드 98 현장. 조금 다른 모습이 신기합니다.

1977년 애플로 돌아온 스티브잡스는 이듬해인 1998년 1월 맥월드 98에 등장.

잡스는 자신이 돌아온 이후 적자로 허덕이던 애플에 4500만 달러의 수익을 안겨줍니다.


아이맥.

일체형 컴퓨터였던 아이맥은 플로피 디스크 대신 USB를 채택해

가장 진보한 제품이라는 평가를 얻었고, 애플의 수익성을 높였습니다.


아이맥의 성공으로 애플은 부활했고,

2000년 스티브 잡스는 회사 실적에 대한 성과급으로 1000만주의 스톡옵션을 받았고,

더불어 걸프스트림 비행기를 무료로 이용할 수 있게 됩니다.


iPod, Therefore i Am.

아이팟은 단순 음악플레이어가 아닌, 음악 생태계를 다시 만들어 냅니다.


스티브 잡스와 유명 록밴드 U2의 리더 보노.


유명한 스탠포드 대학 졸업실의 연설모습.

이 자리에서"Stay Hungry, Stay Foolish."라는 말을 남깁니다.


2006년 맥월드에 나타난 인텔 폴 오텔리니 CEO

스티브 잡스는 이날 맥 컴퓨터의 중앙처리장치(CPU)로 인텔 제품을 사용하겠다고 발표합니다.

윈도 운영체제와의 호환성을 우회적으로 확보한 애플은 이후 점유율이 상승합니다.


2007년, 역사적인 아이폰 발표 현장.


2009년 건강상의 문제로 회사를 떠났던 잡스의 복귀현장.

이날 아이폰 3GS가 발표됩니다.


2011년 아이패드 2 발표회 현장에 등장한 스티브 잡스.

이날이 공식 석상에서의 마지막 모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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