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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크/애플

[jobs] 스티브잡스의 세가지 이야기 (스탠포드 연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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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원문 링크 - http://news.stanford.edu/news/2005/june15/jobs-061505.html

세계적으로 유명한 명문대학인 스탠포드 졸업식에 초대받아
이 자리에 서게 된 것을 무한한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저는 대학을 졸업하지 못했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지금 여러분 졸업식에서 말하는 것이 대학 졸업식에 처음으로 가본 경험이 될 것입니다.
이 자리를 빌어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일어났던 3가지 이야기를
여러분에게 하려고 합니다.
물론 그렇게 대단한 일은 아니고 단지 여러분에게
저의 이야기 세가지를 하려고 합니다.

첫번째는 점을 연결시키는 것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The first story is about connecting the dots.)
리드 대학(Reed University)에 입학한 후 6개월만에 중퇴했습니다.
학교를 중퇴한 후에도 18개월이나 학교에 남아 청강생으로 제가 듣고 싶던 과목을 들었습니다. 학교를 그만 둔 이유가 무엇이냐구요?
이유는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나기 전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저의 생모는 대학생때 임신을 한 미혼모였습니다.
나를 키울 자신이 없었던 엄마는 태어나기 전부터 이미 입양을 하기로 결정하였고, 입양을 하되, 양부모는 반드시 대학출신이어야 한다는 조건을 세웠습니다.
생모 뱃속에 있을 때, 이미 변호사 부부에게 입양이 된 상태였지만, 그들이 원하는 것은 아들이 아니었고 딸이었습니다.
남자로 태어났기에 변호사 부부와의 입영 계약은 깨지고, 대신 웨이팅 리스트에 있던 지금의 부모님이 어느 늦은 밤에 생모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딸이 아니고 아들인데 괜찮겠냐는 생모의 질문에 아들이라도 상관없다고 했지만 나중에 지금의 어머니가 대학문턱에도 가보지 못하고, 아버지 또한 대학을 다니다 말았다는 이야기를 듣고 생모는 입양 계약서에 사인을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양부모님이 나를 대학에 꼭 보내겠다는 각서를 받은 후에야, 입양을 허락했다고 합니다.
17년후에, 리드대학에 입학했습니다.
부모님 사정도 생각하지 않고 바보같게도 스탠퍼드처럼 학비가 비싼 대학을 선택했습니다. 부모님이 노동자로 가난하게 살면서 어렵게 모든 돈을 모두 저의 학비에 써야 했습니다.
대학에 들어갔지만,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이고, 대학 교육이 나에게
인생을 살아가는 데 있어 어떤 도움을 줄 것인가를 알 수 없었던 나에게 가난한 부모님이 평생 모은 돈을 학비에 써버리기에는 그럴만한 가치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학교를 그만두면서 모든 일이 잘 될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물론 학교를 그만두겠다는 결정을 했을 때, 많이 두려웠습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그 결정이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내가 한 결정 중에 가장 훌륭한 결정중의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학교를 그만두니, 평소 흥미를 갖지 못했던
전공과목이나 교양과목을 듣지 않아도 되고
대신 제가 좋아하는 다른 과목들을 들을 수가 있었습니다.
물론 쉽지는 않았습니다.
우선 정규 학생이 아니기 때문에 기숙사 방을 구할 수가 없어,
친구 방바닥에서 잠을 자야 했으며, 밥을 사먹을 돈이 없어,
코카 콜라 병을 갖다주고 받은 5센트를 모아 밥을 사먹거나,
일요일이면 밥을 공짜로 주는 하레 크리스나 절에 가 식사를 했습니다.
물론 그 당시에는 호기심과 직감에 의해 그 절을 다녔지만,
그때의 경험이 나중에 나에게 아주 귀중한 경험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예를 들면, 그 당시 리드 대학에서 가르치는 서예 클라스는 미국에서 최고로 알려져 있었습니다.
학교 게시판에 붙이는 모든 포스터나, 심지어는 학교의 모든 책상 서랍에 붙이는 라벨까지도 아름답게 손으로 직접 만들어진 것이었습니다.
정규학생이 아니기 때문에 전공 과목을 꼭 들어야 할 필요가 없기에, 서예(Calligraphy)를 배우기로 하였습니다.
또한 세리프와 산세리프에 관한 것도 배웠고
다른 글자체 사이에 어떤 식으로 간격을 다르게 하는 가도 배웠고,
활판 인쇄술에 관해서도 배웠습니다.
과학적으로는 어떻게 표현할 수 없는 아름답고, 역사적이면서 예술적인 것들에 많이 빠져 버렸습니다.
그 당시 이것들을 배우면서,
나중에 밥벌이가 된다는 생각이나 희망을 주지는 않았지만,
0년후, 첫 맥킨토시 컴퓨터를 디자인할 때, 그 당시 배웠던 모든 것들을 사용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당시 배운 모든 것을 맥킨토시를 디자인 하는데 사용했습니다.
덕분에 맥킨토시가 컴퓨터로서는 처음으로 아름다운 활판 인쇄술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만약 그때 내가 학교를 그만두지 않고,
서예 클라스를 수강하지 않았다면, 맥 컴퓨터는 지금처럼 다양한 서체를 가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물론 그 당시 대학다닐 때, 모든 점들이 하나로 연결된다는 생각은 꿈도 꾸지 못했습니다. 10년이 지나서 그때를 바라보니 너무나 분명한데도 말입니다.
물론 미래를 바라보면서 모든 점들을 연결할 수 없습니다.
다만 과거를 생각할 때, 모든 점들이 하나로 이어진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들에게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앞으로 모든 점들이 하나로 연결된다는 것을 믿기를 바란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무엇인가, 그것이 당신의 육감이건, 운명이건, 인생 그 자체이건 혹은 업이건, 믿어야 합니다.
그런 태도로 인생을 살아갈 때, 살아가면서 절대로 실망하지 않을 것이며,
내가 그것들을 믿었기 때문에 내 삶에서 많은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나의 두번째 이야기-사랑과 손실
운이 좋게도 나는 내가 좋아하는 일을 아주 일찍 발견하였습니다.
워즈와 나는 내가 20대에 부모님 차고에서 애플 컴퓨터 회사를 시작하였습니다.
우리는 10년동안 아주 열심히 일했고, 10년만에 애플은 자산이 2조억원이며 직원이 4,000명이나 되는 거대한 회사로 발전했습니다.
내 나이 29살 때 우리는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맥킨토시 컴퓨터를 세상에 내 놓았습니다. 그리고 내 나이 30이 되었을 때, 나는 회사에서 해고당했습니다.
내가 만든 회사에서 어떻게 해고를 당했느냐고요?
회사가 커지면서 나와 함께 회사를 운영할 수 있는 아주 재능있는 사람이라고 생각되어, 어떤 분을 회사 CEO로 고용했습니다.
첫해에는 모든 일이 순조로왔습니다. 하지만 미래를 바라보는 우리의 비전이 다르면서 우리 둘의 관계가 점점 나빠지기 시작했습니다.
나와 그 사람의 사이가 아주 나빠졌을 때,
회사 이사회가 그 사람편에 서서 나를 회사에서 해고시켰습니다.
그때 내 나이 30살이었습니다. 나의 해고 소식은 전세계에 알려졌습니다.
성인이 된 이후로, 나의 모든 관심이었던 것이 하루 아침에 사라진 것입니다.
참으로 힘들었습니다.
처음 몇개월동안은 정말이지 아무일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 당시 나처럼 젊은 사업가로 시작해서 중년이 된 유능한 사람들에게
바톤을 받았다고 생각했는 데 그들을 많이 실망시켰다는 생각이 나를 무척 힘들게 했습니다.
데이비드 팩커드와 봅 노이스를 만나 그들을 실망시켜 미안하다고 사과했습니다.
그 당시 나는 공공의 적이 아니라 공공의 실패자였고, 너무 힘들어 삶을 포기하고자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럴 때, 조심스럽게 나의 관심을 끄는 것이 있었습니다.
비록 애플에서 쫒겨났지만, 아직도 내가 하는 일을 무척 사랑했습니다.
비록 사람들에게 버림받았지만, 아직도 나는 그 일을 사랑하고 다시 새롭게 시작하기로 작정하였습니다. 그 당시 해고 당한 후 그렇게 힘들었던 경험이,
지금 생각하면 제 인생에서 일어났던 최대의 축복이라고 생각합니다.
해고당한 후, 성공했다는 무거운 중압감이 사라지고, 또한 모든 것들을 잘 할수 있다는 자신감이 없는 초발심의 마음이 되어 아주 편안한 마음이었습니다.
그때가 내 인생에서 창의력을 가장 활발하게 발산할 수 있었던 시기로 접어 들었다고 생각합니다.
해고 당한 후 5년동안에, NeXT 라는 새 회사와 또 다른 회사 Pixar를 설립하고
지금은 내 부인이 사랑하는 여자를 만나게 된 것입니다.
Pixar 는 세상에서 처음으로 컴퓨터 애니매이션 영화인 토이 스토리를 개발했고,
이제는 세계에서 가장 성공족인 애니매이션 스튜디오가 되었습니다.
이런 혁기적인 일련의 일들이 일어나는 동안,
애플은 NeXT 회사를 병합했습니다.
그리고 나는 애플로 돌아왔습니다.
NeXT 에서 개발한 테크놀로지가 애플의 최신 르네상스의 핵심입니다.
부인 로레네와 나는 행복한 가정을 가지고 있습니다.
내가 애플에서 해고를 당하지 않았다면
이런 일들은 절대로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좋은 약은 쓰다는 말처럼
살아가면서 당신 머리를 돌로 치는 일이 일어난다 하더라도, 신념을 잃지 마십시요.

지금까지 나를 지탱해준 것은 내 일을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 또한 여러분이 하는 일을 사랑하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충실하듯이 여러분이 하는 일에 충실하기를 바랍니다.
당신이 하는 일이 당신 인생의 대부분을 차지하기 때문에,
자신이 좋아하고 만족해하는 일을 하기를 바랍니다.
위대한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하는 것입니다.
위대한 일이란 당신이 사랑하는 일입니다.
당신이 사랑하는 일을 아직 찾지 못했습니까? 계속 찾도록 하십시요!
절대로 찾는 것을 중간에 포기하지 마십시요!
당신이 사랑하는 일이라는 것은 당신 가슴(Heart)와 연결된 것입니다.
당신이 그것을 찾았을 때, 당신은 느낄 것입니다.
모든 위대한 인간들이 나이가 들면 들수록 더욱 위대해지는 것처럼,
당신이 사랑하는 일 또한 세월이 가면 갈수록
더욱 더 좋아지는 것을 느낄 것입니다.
여러분이 사랑하는 일을 찾을 때까지 계속 찾기를 바랍니다.
절대 포기하지 마십시요.

나의 3번째 이야기는 죽음에 관한 것입니다.
17살이었을 때,
“오늘 하루가 삶의 마지막 날이라고 생각하고 살아간다면
언젠가는 당신이 옳다는 것을 알 것입니다!”라는 글귀를 었습니다.
이 글이 아직도 나에게 많은 영향을 줍니다.

지난 33년간 매일 아침마다 거울을 보면서 내 자신에게,
“오늘이 내 삶의 마지막 날이라면, 오늘 해야 할 일들을 계속 할 것인가?"라고
물었을 때, No 라는 대답이 며칠 계속동안 나오면 무엇인가 바꾸어야 한다는 것을 압니다.
내가 곧 죽을 것이라고 그 생각이,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중요한 선택인나 결정을 할 때
나에게 많은 도움을 주었습니다.
왜냐하면 거의 모든 것들이, 예를 들어 외적인 기대나,
자존심이나 망신당할까봐 혹은 실패할까에 대한 두려움들이
죽음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며,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알게 됩니다.

곧 죽는다고 생각할 때,
더 이상 잃을 것도 없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럴 때, 자신의 Heart를 따르지 않을 하등의 이유가 없게 됩니다.
약 일년 전에 암이라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아침 7시 반에 스캔을 했더니, 췌장암이라는 진단을 나왔습니다.
그때까지 췌장이 무엇인지 몰랐습니다.
의사 말로는 췌장암은 치유가 불가능하다고 하면서
3개월에서 6개월밖에 살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 말을 하면서 의사 선생님은
저에게 집에 가서 정리할 것을 정리하라고 했습니다.
그 말은 죽을 준비를 하라는 것입니다.
그 말은 자식들에게 앞으로 10년동안 할 이야기를
몇개월동안 다 하라는 이야기였습니다.
그 말은 또한 모든 것들이 다 끝났으니 식구들에게
작별인사를 하라는 이야기였습니다.
그 말을 들은 하루내내 정신이 없었습니다.
그날 밤 바이옵시(생체검사)를 했는데,
그것은 목을 통하여 위 그리고 창자를 통하여 췌장에 주사를 넣어
종양 티슈를 꺼내는 내시경검사였습니다.
전신 마취가 된 나는 그 당시
어떤 일이 일어나는 지 알 수 없었지만,
내 부인은 내내 내 곁에 있었습니다.
의사 선생님이 내 췌장에서 꺼낸 종양 티슈를 현미경으로 보고는 울더랍니다.
췌장에서 꺼낸 종양 티슈는 보기 드문 종양으로써 수술하면 치유될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수술을 했고 이제 다시 건강해졌습니다.
그때가 죽음의 문턱에 가본 첫번째 경험이었습니다.
앞으로 몇십년동안 그때가 죽음의 문턱에 가본 유일한 경험이기를 희망합니다.

한번 그런 경험을 겪으니,
여러분에게 죽음에 대해서 지적 개념으로써가 아니라
아주 유용하게 말할 수 있습니다.
이 세상에 죽기를 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죽어 천당에 간다고 하더라도 죽기를 원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하지만 아무도 죽음을 피할 수는 없습니다.
인간이라면 겪어야 하는 것입니다.
만약 그렇다면 죽음이라는 것은 삶이 만들어 낸 최상의 발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죽음이라는 것은 마치 체인지 에이전트와 같은 것입니다.
즉 새것이 들어올 수 있도록, 헌것이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지금 현재 여러분들은 아주 젊지만,
언제가는, 아니 여러분이 생각한 것보다 아주 빠르게
여러분들은 늙을 것이며, 지구상에서 사라질 것입니다.
너무 잔인하게 들리지는 모르지만 사실입니다.
여러분이 이 지구상에 존재하는 시간은 아주 제한되어 있습니다.
그러기에 다른 사람의 삶을 살면서
당신의 짧은 삶을 낭비하지 마십시요.

도그마(신조나 교조)에 빠져서 시간을 낭비하지 말기를 바랍니다.
그것들은 다른 사람들이 한 생각들의 결과일뿐입니다.
즉 다른 사람들의 생각에 맞추어 살아가지 말라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의 시끄러운 의견이나 아이디어들이
당신 내면에서 나오는 내면의 목소리를 집어 삼키지 말도록 하기를 바랍니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당신의 가슴소리(Heart)와 직감을 따르십시요!
당신의 하트와 직감은 앞으로 당신이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를 알고 있습니다.
그외의 모든 것들을 이차적인 것들입니다.


제가 어렸을 때, ‘전세계 카탈로그’ 라는 훌륭한 잡지가 있었습니다.
그 잡지는 그 당시 내 또래 아이들의 바이블같은 것이었습니다.
여기에서 멀지 않은 멜로 공원에서
스튜어트 브랜드라는 사람에 의해서 만들어 진 것인데,
그 잡지에 시적 감각을 가미해 잡지는 더욱 더 보기 좋았습니다.
개인 컴퓨터가 나오기 전인 1960년대 말이었으니
모든 것이 타이프 라이터, 가외 그리고 폴라로이드 카메라로 만들어 진 것입니다.
그 잡지는 그 당시의 구글과 같은 책이었습니다.
구글이 나오기 35년전이었으니 아주 이상적이었고,
그 책에는 우리들이 필요로 하는 간단한 것들과
위대한 생각들로 넘쳐 흘렀습니다.
스튜어트와 그의 팀은 ‘온 세계 카탈로그’ 잡지를 오랫동난 발행했습니다.
잡지사가 문을 닫게 되었을 때가 1970년대였으니,
내가 여러분의 나이였을 때입니다.
최종호 잡지 뒷장에 새벽 아침의 시골길 사진이 실렸습니다.
그 사진 밑에 “ Stay Hungry. Stay Foolish” 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이 말이 그들이 독자들에게 하는 굿바이 인사말이었습니다.

살아가면서 항상 “Stay Hungry. Stay Foolish"라는 말을 생각합니다.

학교를 졸업하고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여러분들에게
Stay Hungry. Stay Foolish라는 말을 마지막으로 하고 싶습니다.
대단히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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